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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허당 영규(騎虛堂 靈圭: ?~1592)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했다. 그리고 제2차 금산전투(錦山戰鬪)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진영은 면바탕에 채색되었으며, 화면 향우측 상단에 직사각형의 주색 영제란을 마련하여 ‘부종수교복국우세기허당영구대사지진(扶宗樹敎福國祐世騎虛堂靈圭大師之眞)’을 기술하였다.
왼쪽을 향하여 정좌한 반측면 자세를 취하고 붉은색의 법피를 두른 여의두문 장식 의자에 앉아있으며 백색 소삼(小衫), 녹색 장삼(長衫)을 입고, 적색 가사(袈裟)를 수(垂)하였다.
가사의 환(環) 장식과 가장자리 부분의 화문(花文)은 녹색과 적색의 색 대비와 더불어 화려하게 그려졌으며, 왼손은 의자 팔걸이에 얹었고 오른손은 신체에 비해 작은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